마음(1669)   2018-05-05 (토) 08:36
불영사관리자   45




마음(1669)


부처님 나라 인도에 대하여- (41)

8), 원후봉밀설화가 있는 대림정사

부처님은 바이샬리를 무척 아끼신 도시 가운데 하나이다. 이곳에서 원숭이 무리들이 연못을 파서 부처님께 공양 올렸고 또한 원숭이들이 밀수(蜜水) 공양을 올렸던 자리라고 위에서 이미 밝혀 두었다.

또한 이곳에서 창녀 암마라(암마라 Amrapali)를 제도 한 곳이기도 하다.
암마라는 중인도 바이샬리 출신의 유녀(遊女)로서 절세미인이었다고 전한다. 그녀의 나이 15세가 되자 일곱나라의 왕들이 무력을 동원하여 그녀를 서로 찾으려고 전쟁을 치를 정도가 되자 암파라는 이를 괴로워하였다.

그러자 암마라는 생각하기를 내 몸이 미인이라면 어느 한 남자의 소유로서는 살 수가 없다고 생각하여 그만 창녀의 길로 접어들고 말았다.

암마라는 빔비사라 왕과도 통정을 하여 그 유명한 의사로서 알려진 기바(耆婆)를 낳았다.

암마라는 의술에도 조예가 깊어 기바에게 의술을 가르쳤으며 이외에도 음악과 천문학에도 능통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부처님은 암마라의 초대를 받아 암라수원으로 초대되었을 때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자신의 원림을 기꺼이 보시를 하였다.
암마라 여인에 대한 다른 표현으로는 암파라녀(菴婆羅女), 암라위녀(菴羅衛女),암라녀(菴羅女),암수녀(菴樹女), 암몰라녀 등의 이름이 있다.

부처님은 열반이 멀지 않았음을 아시고도 병든 몸을 이끌고 이곳에 와서 잠시 머무르셨다가 약 5개월 뒤에 열반에 드시었다.

부처님께서는 이곳을 떠나시기 전에 바이샬리는 참으로 좋은 곳이라고 칭찬을 하셨다고 한다.

밧지(Vajji) 족의 수도였던 바이샬리의 대림정사 석주는 인도에 남아 있는 아소카왕의 12개 석주 가운데 가장 온전한 상태로 남아 있다. 그러나 1980년경의 사진을 보면 지금의 모습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황량한 벌판에 아소카 석주만 덩그러니 서 있을 뿐이다.

내일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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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불행한 사람이 아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집중하며 오늘도 소중한 하루를 창조해 가시길 바랍니다.

산은 늘 푸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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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건강한 마음으로 자비를 실천하는 하루 이어가시길 기원합니다.

불영사 회주 심전일운 합장.

* 위 사진은 1980년경 사진에 있는 아쇼카 석주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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