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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송 숲길과 아름다운 연못이 있는 맑고 푸른 세상 천축산 불영사

의상대사 창건이야기(불영사)   2014-07-15 (화)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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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佛影寺(불영사)
 
불영사(佛影寺)는 울진군 서면 불영사길 48 천축산(天竺山)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 불국사의 말사이다.
불영사가 자리한 불영사 계곡은 명승 제6호로 지정된 15㎞에 이르는 길고도 장엄한 계곡이다. 예전에는 워낙 교통이 불편하여 찾는 이가 많지 않았으나 1985년 불영사 계곡을 끼고 달리는 36번 국도가 포장되면서 여름철 피서지로 각광을 받게 되었다.
불영사 계곡은 성류굴의 맞은편이 되는 수산리로부터 노음리 천전동 건작,  밭치밭, 하원리 등으로 이어진다.
주변에는 광대코 바위, 주절이 바위, 창옥벽, 명경대, 의상대, 산태극, 수태극 등 각종 이름이 붙은 명소가 30여 개소에 이른다.
 
  절벽은 흰빛을 띠는 화강암이 풍화되어 기괴한 모습으로 맑은 물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치를 이룬다. 차를 타고 달리면 계곡을 감상할 수도 있으며, 전망이 좋은 곳에는 2층 팔각정인 선유정과 불영정이 세워져 있다.
천축산과 불영산 계곡은 생태의 보고이기도 하여 요즘 보기 드문 꼬리진달래와 백리향을 비롯해 560여 종류의 식물이 이 지역에서 서식하고 있다. 또한 학술 조사를 통해 조류 11종, 어류 42종, 포유류 17종, 나비 30종, 거미류 94종이 살고 있음이 밝혀졌다.
  불영사는 651년(신라 진덕왕 5) 의상 대사(625~702)가 창건한 유서 깊은 고찰이다. 의상 대사가 신라의 수도 경주에서 해안을 따라 단하동(丹霞洞) 해운봉에 올라 북쪽을 바라보니, 서역의 천축산을 옮겨온 듯한 지세가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맑은 물위에 부처님 다섯 분의 형상이 떠올라 인연 깊은 곳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부근 폭포에 독룡(毒龍)이 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대사는 처음  독룡에게 설법하고 이 땅을 보시할 것을 청했으나 용이 따르지 않자 법력으로 쫓아내었다.
  용은 분하여 산을 뚫고 돌을 부수며 떠났는데 대사가 못을 메워 사찰을   창건하였다. 의상 대사는 이어서 남쪽에 청련전(靑蓮殿)을 짓고 무영탑(無影塔)을 세워 비보(裨補)한 뒤 산 이름을 천축산, 절 이름을 불영사라 하였다.
  처음 연못에 비친 부처님 모습의 바위는 불영암(佛影巖), 용이 산을 뚫었다는 자리는 용혈(龍穴), 용이 도사리고 있던 곳을 오룡소(五龍沼)라고 하며, 불영사를 휘감아 도는 광천(光川) 계곡은 구룡(九龍) 계곡으로도 불린다.
지금 사찰 경내에 있는 연못이 바로 의상 대사가 부처님 그림자를 보았다는 불영지(佛影池)이다.

  그런데 불영사를 창건한 의상 대사는 그 뒤 오랫동안 천하를 두루 다니다가 오랜만에 다시 불영사로 돌아왔다. 그때 절 입구의 선사촌(仙海村)에 이르러 한 노인을 만났는데, 그는 몹시 기뻐하며 말하기를
  “우리 부처님이 드디어 돌아오셨군요!”하였다. 마을 사람들도 이를 보았는데, 그 이후로 불영사를 불귀사(佛歸寺)로 부르게 되었다.
그리고 천축산이 백암산 줄기이므로 백암산(白巖山)으로 불렸다고 한다.
백암산은 울진군 온정면과 영양군 수비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해발 1,004m이며 태백산맥의 줄기인 중앙산맥에 딸린 이 지방의 명산이다.

  의상 대사는 불영사를 창건하고 9년 동안 머물렀고 원효 대사도 왕래하였다. 그리고 당시 불귀사, 곧 불영사 주변에는 동쪽으로 삼각봉(三角峰), 절 아래로 좌망대(坐忘臺)․오룡대(五龍臺), 남쪽으로 향로봉(香爐峰)․청라봉(靑螺峰)․종암봉(鍾巖峰), 서쪽으로 부용성(芙蓉城)․학소대(鶴巢臺), 북쪽으로 금탑봉(金塔峰)․의상대(義湘臺)․원효굴(元曉窟)․용혈(龍穴) 등이 있어 모두 절의  승경을 이루었다고 한다.
  창건에 대한 이러한 내용은 1370년(고려 공민왕 19) 유백유(柳伯儒)가 지은 「천축산불영사기」에 나와 있다.

이 「천축산불영산기」는 불영사에 대한 최초의 기문으로, 이후 많은 중수  현판들이 모두 이 기문을 인용했을 정도로 유명하다. 지금 그 원문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종이에 묵서하여 기록한 듯하다.
이 기문은 「불영사중창기」에 따르면 1611년 무렵까지만 해도 절에 보관되었던 것을 알 수 있지만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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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진전(불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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